서울대 면접 후기
8년이 지나서 쓰는 서울대 면접 후기.
가끔 그때를 생각한다. 학창시절을 모두 걸었던 대입시험. 우리나라 최고로 일컬어지는 대학의 가장 컷트라인이 낮은 학과. 아빠는 그래도 좋았는지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가자고 했다.면접에서 제시된 문제는 낯설었다. 10을 상대방과 나눌 때, 내가 상대에게 금액을 제안한다. 상대방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각자 제시한 금액을 갖는다. 상대방이 제안을 거절하면 둘 다 돈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얼마를 제안할 것인가? 나는 4, 상대방은 6이라고 했다. 교수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들이 의도한 정답은 다른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 하고서 알게 되었다. 행동경제학을 연구하는 뇌과학자 강연을 들을 때였다. 강연 도중 단상에 선 나는 같은 질문을 받았고, 그때의 면접과 정답이 함께 떠올랐다. 상대방의 몫으로 아무리 적은 돈을 제안해도, 그의 입장에서는 거절하는 것 보다 이득이다. 그럼 최대한 나의 이익을 크게 취해야 합리적이다. 답은 9:1. 그것이 내가 배워온 경제학의 "합리성"이었다. 다시 그 겨울의 면접장으로 되돌아가, 내가 정답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고. 이제 나는 여기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에 적절한 사람이 되었냐고 되묻고 싶었다. 4년 전 면접장에서 만난 그 사람들이 원하던 그 답을 제시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하지만 강연자였던 교수는 굳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던 것 같다. 보통 그동안의 주류경제학은 이런 것을 합리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러한 제안은 상대에 대한 호감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사람의 선택은 여러 요인의 영향를 받는다고. 나는 의도와 달리 상대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가 매우 낮은 사람이 되었다. 다양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뭔가는 명확해졌다. 열아홉 살, 그때의 내가 면접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정답을 말할 수 없었다는 것.
공평하게 나누거나 남을 위해 더 내어주는 시골 생활이 익숙했던 열아홉의 나는, 다른 아이들 처럼 논술 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고 대학에나 들어가야 배우는 게임의 법칙을 접해보지 못한 나는, '합리적'이라고 불리지만 비상식적인 논리를 내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그때의 질문은 아마도, 면접자 부모의 소득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면접장에 뭐 타고 왔어요?"를 묻는다는 시험관처럼(실제로 면접날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고, 집이 너무 시골이라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대답을 했다. 소득수준과 탈 것의 상관관계에서는 아웃라이어였다) , "너 이런 면접학원 다녔니?"를 묻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내 실패의 경험들을 돌이켜본다. 좋은 대학에 나를 보내고 성과급을 챙기기 위해 전과를 시켰던 선생님. 경제학과 지원한 학생이 경제학 점수가 이렇게 낮냐는 질문에 "저는 지금 여기 있지만 과학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요." 라는 대답 대신 울먹였던 면접 자리. 공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진학한 대학원에서도 유학을 꿈꾸지 못하고 온갖 프로젝트로 스스로를 소진시킨 나날들.
그냥 이 새벽에 누워서 남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왈콱 눈물이 났다. 실패로 가득 찬 내 시간들이 나를 아직도 묶어두는 것 같아서. 엄마아빠의 삶에도 이런 바보같은 상황의 아픈 경험이 가득 차 있을 것 같아서.
언젠가 '이 바보 같은 아픔의 고리를 끊어내고 나니 아무 것도 아니더라' 말할 수 있을까. 누구라도 이야기 해주면 좋겠다. 너 지금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이제 또 실패할 거란 두려움은 다 잊고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해보라고. 결국에는 하나 뿐인 삶을 잘 살아 내게될 거라고.